실천 유학의 선구자 정여창의 숨결이 서린, 함양 남계서원

덕유산과 지리산 줄기를 품은 경남 함양은 산천이 아름다운 고장

이성훈 | 기사입력 2019/09/23 [07:56]

실천 유학의 선구자 정여창의 숨결이 서린, 함양 남계서원

덕유산과 지리산 줄기를 품은 경남 함양은 산천이 아름다운 고장

이성훈 | 입력 : 2019/09/23 [07:56]

[이트레블뉴스=이성훈 기자] 덕유산과 지리산 줄기를 품은 경남 함양은 산천이 아름다운 고장으로 손꼽힌다. 더불어 선비의 고장으로도 통한다. 예부터 좌 안동 우 함양이라 하는데, 안동에 퇴계 이황이 있다면 함양에는 일두 정여창이 있다. 정여창의 위패를 모신 함양 남계서원(사적 499호)은 조선 시대 서원 초기 건물 배치의 전형을 제시했으며, 지난 7월 한국의 서원 9곳에 들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 정여창의 위패를 모신 함양 남계서원 전경 _ 함양군청  


남계서원은 영주 소수서원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건립된 서원이다. 1552년 개암 강익 선생이 정여창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지역 선비들과 함양군수의 지원을 받아 건립했다. 1566년에 사액을 받았고, 1597년 정유재란으로 소실됐다가 1612년 중건했다. 이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에도 살아남은 47곳 중 하나다. 남계는 서원 앞을 유유히 흐르는 하천에서 딴 이름이다.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서원은 남계천이 지나가는 너른 들판 너머 정여창의 고향인 개평마을을 아스라이 굽어본다.

 

▲ 경사진 지형을 그대로 살린 건물 배치가 돋보인다. _ 함양군청   


조선 전기 사림파를 대표하는 일두 정여창은 퇴계 이황, 한훤당 김굉필, 정암 조광조, 회재 이언적과 함께 동방5현으로 불린다. 여러 차례 벼슬을 마다하다가 1490년(성종 21) 과거에 급제해 연산군을 모셨지만, 1498년 무오사화에 휩쓸려 유배지인 함경북도 종성에서 죽음을 맞았다. 이후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 당하는 비극까지 겪는다.

 

▲ 서원에서 청렴을 상징하는 배롱나무  


실천 유학의 선구자로 살다 간 정여창의 숨결이 남계서원 곳곳에 스며들었다. 건물 이름에 담긴 뜻을 알면 더 알차게 둘러볼 수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서원 입구 관광안내소에 문화해설사가 상주하니, 서원 구석구석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봐도 좋다. 홍살문을 지나면 서원의 출입문인 풍영루가 고풍스러운 자태를 뽐내며 여행자를 맞는다. 유생이 토론하거나 휴식하던 공간이다.

▲ 남계서원 홍살문    


2층 누마루에 오르면 너른 들판과 순하게 펼쳐진 백암산 자락이 한눈에 잡힌다. 풍영루는 《논어》에 등장하는 공자와 증점의 대화에서 따온 이름이다.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며 돌아오겠다는 내용으로, 공자가 추구하는 이상 세계를 뜻한다. 벼슬보다 성인의 길을 지향한 정여창의 이상 세계를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 색 바랜 단청이 운치를 더하는 풍영루  


풍영루를 지나면 유생이 생활하던 양정재와 보인재가 좌우로 배치됐는데, 각 건물과 마주한 연지가 이색적이다. 정여창은 살아생전 연꽃을 좋아했다. 양정재 누마루에 애련헌이라 이름 붙인 것 또한 연꽃에 대한 애정을 대변한다. 애련헌은 중국 북송 시대 유학자 주돈이가 쓴 시 애련설에서 따왔다. 흙탕물에 자라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깨끗한 물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은 연꽃을 군자의 품성에 비유한 시다. 유생은 이곳 누마루에 앉아 연못을 바라보며 쉬었을 것이다. 양정재는 현재 보수공사 중이며, 올 12월쯤 마무리될 예정이다.

 

▲ 양정재, 보인재와 풍영루 사이에 연못이 있다.  


보인재도 눈여겨볼 만하다. 정여창은 당시 함양군수를 지낸 김종직 문하에서 김굉필과 함께 학문을 닦았고, 무오사화 때 변을 당했다. 보인재는 정여창과 김굉필의 막역한 관계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군자는 글로 벗을 사귀고 벗으로 말미암아 학문을 완성한다는 뜻이다. 영매헌(詠梅軒, 매화를 읊는 집) 누마루가 운치를 더한다.

 

▲ 보인재와 ‘매화를 읊는 집’이라는 뜻이 있는 영매헌  


양정재와 보인재를 양옆에 거느리고 돌 기단 위에 당당히 선 명성당은 유생이 모여 학문을 논하던 강당이다. 대청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풍영루와 연지가 또 다른 멋을 풍긴다. 명성당 오른쪽에는 유생을 가르친 책, 서원이 소유한 문집, 책판, 유품 등을 보관하던 경판고(장판각)가 있다.

 

▲ 강당으로 쓰인 명성당  


명성당 뒤쪽으로 가파르게 이어진 계단을 오르면 내삼문을 지나 사당에 이른다. 내부에 정여창의 위패와 남계서원 설립을 주도한 개암 강익, 동계 정온의 위패를 모셨다. 정온은 병자호란 때 이조참판을 지낸 인물로, 인조가 청에 항복하자 벼슬을 버리고 함양으로 와 덕유산 자락에서 은거했다. 이처럼 앞쪽에 공부하는 공간을, 뒤쪽에 제사 지내는 공간을 배치한 전학후묘는 선현이 뒤에서 후손을 품다라는 의미가 있다. 이는 남계서원이 최초였고, 이후 서원 배치 형태의 본보기가 됐다.

 

▲ 사당으로 이어지는 내삼문    

 

사당 앞마당과 내삼문 앞 돌계단은 남계서원 최고 명당이다. 한여름부터 9월까지 진분홍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가 담장을 수놓는다. 배롱나무 너머로 명성당과 풍영루, 멀리 백암산 자락이 한눈에 내다보인다. 해 질 녘이면 백암산과 들판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이 장관이다.

 

▲ 내삼문 앞 돌계단에서 바라본 풍경    


남계서원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개평한옥문화체험휴양마을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인기에 힘입어 함양의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정여창이 나고 자란 함양 일두고택(국가민속문화재 186호)을 비롯해 100년 넘은 한옥 60여 채가 모여 있다. 관광안내소인 일두홍보관에서는 해설사와 함께 마을 투어를 진행한다.

 

▲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인기에 힘입어 함양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개평한옥문화체험휴양마을 전경  


마을에 체험 공간도 여럿이다. 솔송주문화관에서는 박흥선 명인이 빚은 술을 맛보고, 예약하면 증류 내리기와 칵테일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아이와 함께라면 호미랑농촌교육농장에 들러도 좋다. 압화 부채 만들기 같은 상시 체험이 가능하고, 9월에는 식용 꽃을 활용한 떡 만들기를 진행할 예정이다. 인원에 따라 체험 내용이 달라질 수 있으니, 체험 전 문의는 필수다. 카페도 운영 중이라 차 한 잔 마시며 쉬었다 가기 좋다.

 

▲ 마을 내 호미랑농촌교육농장에서 들꽃과 함양 특산물 산삼으로 만든 부채    


함양의 자연과 역사, 문화를 두 발로 즐기고 싶다면 선비문화탐방로를 걸어볼 만하다. 예부터 팔담팔정(八潭八亭 : 8개 못과 8개 정자)으로 유명한 화림동계곡을 끼고 걷는 길이다. 두 구간 중 거연정에서 농월정까지 약 6.2km 이어진 1구간을 추천한다. 이 길에는 선비들이 풍류를 읊던 정자가 7개 남아 있는데, 정자에 얽힌 역사와 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동호정과 농월정은 정자 앞 너럭바위가 압권이다. 남강의 물빛과 기암괴석이 절경을 빚어낸 거연정, 정여창을 기리기 위해 지은 군자정도 이 길의 포인트다.

 

▲ 선비문화탐방로 1구간에서 만나는 농월정은 정자 앞 너럭바위가 압권이다.


함양읍 서쪽 위천 가에 자리한 함양상림(천연기념물 154호)은 고운 최치원이 천령군(지금의 함양군) 태수로 재직할 때 조성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다.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강변에 둑을 쌓아 만든 숲이 지금껏 이어져 천년의 숲이라고도 불린다. 100~500년 된 낙엽활엽수림에 발을 들이면 천년의 숨결이 아득히 밀려온다. 푹신한 낙엽이 융단처럼 깔리는 만추의 상림을 최고로 치지만, 꽃무릇이 만개하는 9월 중순도 그에 못지않다. 19만 8000㎡ 규모에 조성된 상림공원 일대가 온통 붉은 물결로 넘실대 낭만을 더한다.

 

▲ 9월 중순이면 상림공원을 물들이는 꽃무릇 _ 함양군청    


○ 당일여행 : 상림공원→남계서원→개평한옥문화체험휴양마을→선비문화탐방로

 

○ 1박 2일 여행 : 첫날_선비문화탐방로→남계서원→청계서원→개평한옥문화체험휴양마을 / 둘째날_상림공원→하미앙와인밸리→지리산조망공원

 

○ 축제와 행사 : 2019 함양산삼축제 2019년 9월 6~15일, 상림공원 일원, 055-964-3353(산삼축제위원회)

 

○ 주변 볼거리 : 용추계곡, 벽송사, 서암정사, 오도재 / 관광공사_사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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