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포 자락 여미고 고개를 숙여야 들어설 수 있는 달성 도동서원

서원이 딱딱하고 권위적일 거라는 생각은 오해 소박하고 사랑스럽다

이성훈 | 기사입력 2019/09/30 [03:20]

도포 자락 여미고 고개를 숙여야 들어설 수 있는 달성 도동서원

서원이 딱딱하고 권위적일 거라는 생각은 오해 소박하고 사랑스럽다

이성훈 | 입력 : 2019/09/30 [03:20]

[이트레블뉴스=이성훈 기자] 달성 도동서원(사적 488호)은 동방5현 중 가장 웃어른인 김굉필을 모시는 곳이다. 서원이 딱딱하고 권위적일 거라는 생각은 오해다. 도포 자락 여미고 겨우 오를 수 있는 계단과 고개를 숙여야 들어설 수 있는 문이 소박하고 사랑스럽다. 동입서출의 규칙에도 귀여운 다람쥐가 등장한다. 12각 돌을 조각보처럼 이은 기단 앞에 서면 심장이 멎는다.

▲ 400여 년 동안 도동서원과 역사를 함께한 은행나무    


지루한 강학 공간에 보물처럼 숨겨진 장치를 하나하나 소개한다.  도동서원으로 향할 때는 낙동강을 끼고 한적한 길을 달리다가 다람재를 넘는다. 다람재는 도동서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명당이다. 오른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왼쪽 나지막한 언덕을 따라 서원의 기와지붕이 모여 앉았다. 배산임수를 몰라도 절로 편안해지는 풍경이다.

 

▲ 달성 도동서원 강학 공간인 중정당 마루에서 본 풍경  


주차장에 차를 멈추면 거대한 은행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400여 년 세월 동안 도동서원을 지켜온 수문장으로 김굉필나무라 불린다. 어른 6명이 팔을 벌려야 안을 수 있을 정도로 굵다. 도동서원은 한훤당 김굉필의 학문과 덕행을 추앙하기 위해 세웠다. 건립을 주도한 이는 외증손자인 한강 정구다. 은행나무 역시 그가 서원 중건 기념으로 심었다고 한다. 하늘마저 가린 무성한 초록빛 사이로 수월루가 보인다. 

▲ 도동서원 중정당으로 들어가는 환주문. 몸을 낮춰야 배움터로 들어갈 수 있다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수월루 앞은 배롱나무꽃이 한창이다. 붉은 꽃이 그늘을 드리운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사방 담장으로 막힌 좁은 공간에 가파른 돌계단이 눈에 띈다. 계단은 한 사람이 겨우 오를 정도로 좁고 소박하다. 도포 자락 단단히 여미고 더듬어 올랐을 계단. 이 앞에서 포기하고 돌아간 선비도 더러 있었으리라. 심호흡을 하고 계단을 디디려는 찰나, 초입 난간 소맷돌에 조각된 꽃봉오리가 보인다. 긴장한 와중에 꽃향기가 사르르 퍼진다.

 

▲ 다람재에서 내려다본 도동서원과 낙동강


계단 끝에서 만나는 환주문은 배움터인 중정당으로 들어서는 문이다. 높이가 1.5m에 불과해 어른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숙여야 한다. 갓 쓴 선비야 오죽했을까. 자신을 낮추는 선비의 마음을 갖춰야 배움이 허락됐다. 환주문에는 문지방 대신 꽃봉오리 모양 정지석이 있다. 문 닫을 때 고정하는 정지석에 소박한 멋을 담았다. 배움터로 들어서는 마지막 발걸음에 놓인 돌부리가 엄중하면서도 부드럽다.

 

▲ 배롱나무꽃이 그늘을 드리운 수월루  


중정당은 강학 공간이다. 중정당 마당에 기숙사인 거인재와 거의재가 마주 보고 있다. 마당 한가운데 돌판 깔린 길이 놓였고, 길 끝에 돌 거북 한 마리가 머리를 불쑥 내민다. 눈을 부릅뜨고 송곳니를 드러낸 채 무섭게 노려본다. 중정당으로 오르는 길에 눈곱만큼이라도 딴생각을 하다가는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화재 같은 액운을 막기도 하지만, 배움의 품으로 들어설 때 잡생각을 버리고 정신을 집중하라는 경고이리라.

 

▲ 강학 공간인 중정당


도동서원 소박한 멋의 진수는 중정당 기단이다. 보는 순간 심장이 멎는다. 크기와 색깔, 모양이 제각각인 돌을 쌓아 올린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전국의 제자들이 스승을 추모하기 위해 저마다 마음에 드는 돌을 가져온 것이라 한다. 페루에 잉카제국의 12각 돌이 유명하다는데, 중정당 기단에도 12각 돌이 있다. 4각에서 12각까지 틈새 없이 쌓은 모양이 조각보처럼 곱다.

 

▲ 전국의 제자들이 가져온 돌로 쌓아 올린 중정당 기단  


기단에는 용 네 마리가 머리를 내밀고 있다. 이곳에서 공부한 선비들이 과거에 급제해 용이 되라는 기원이 담겼다. 중정당 계단 옆에 다람쥐가 새겨졌다. 오른쪽은 올라가는 모습이고, 왼쪽은 내려오는 모습인데 너무나 귀엽다. 동입서출의 딱딱한 규칙을 사랑스럽게 표시한 마음이 전해온다.

 

▲ 중정당 오른쪽 계단에는 올라가는 다람쥐가, 왼쪽 계단에는 내려오는 다람쥐가 새겨졌다.    


중정당 굵은 기둥 위에 흰 종이(상지)를 둘러놓은 것이 눈에 띈다. 상지는 국내 서원 650여 곳 가운데 도동서원에만 있다고 한다.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을 동방5현으로 꼽는데, 그 가운데 가장 웃어른을 모신 곳이라는 표시다. 한훤당 김굉필은 평생을 학문으로 살다 갔다.

 

▲ 중정당 기둥에 두른 상지는 동방5현의 가장 웃어른을 모신 서원이라는 표시다  


김종직에게 《소학》을 배워 수제자가 됐고, 조광조를 비롯해 수많은 후학을 가르쳤다.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으로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제자인 김굉필 역시 유배됐다가 사약을 받는다. 1610년(광해군 2) 조광조에 의해 동방5현의 최고봉으로 복원된다. 퇴계 이황은 김굉필을 두고 공자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며 칭송했고, 이는 서원의 이름 도동이 됐다.

 

▲ 사당으로 오르는 계단에 새긴 꽃 한 송이    


도동서원 담장은 중정당, 사당과 함께 보물 350호로 지정됐다. 진흙 사이에 암키와를 엇갈리게 쌓고, 중간중간 수막새를 넣은 솜씨가 단정하면서도 멋스럽다. 담장을 따라 중정당 뒤쪽으로 돌아가면 사당이다. 사당에 오르는 계단 역시 좁고 투박하지만 자세히 보면 어여쁘다. 돌계단 들머리에 태극 문양, 난간에 새긴 꽃봉오리, 계단 한가운데 튀어나온 양두석 등 꼼꼼히 보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장치가 곳곳에 있다. 특히 내삼문 앞 계단 바닥에 꽃 한 송이가 새겨졌다. 김굉필을 모신 사당 앞에 사철 지지 않는 꽃 한 송이 피워 올린 제자들의 마음이 꽃 같다.

 

▲ 대니골 등산로를 10분 정도 오르면 김굉필 묘가 있다    


도동서원 옆에 대니골 등산로가 있다. 솔밭 사이로 난 길을 10분 정도 오르면 김굉필 묘가 보인다. 솔향기, 바람 소리와 함께 겉치레보다 마음가짐을 중히 여기던 옛 선비의 정신을 곱씹으며 걷기 적당한 길이다. 은행나무 노랗게 물드는 가을에, 사당 앞 모란이 피는 고운 봄날에 다시 와도 좋을 도동서원이다.

 

▲ 한훤당고택은 예쁜 한옥 카페로 유명하다.  


도동서원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한훤당고택이 있다. 김굉필 사후 11대손 김정제가 터를 잡고 300년 넘게 대를 이어온 종택으로, 최근 몇 년 새 예쁜 한옥 카페로 이름났다. 품격 높은 고가에서 만든 전통차와 유기농 커피를 즐기며 특별한 시간을 누려보자. 한옥스테이도 운영한다. 금계포란형 명당이라니 하룻밤 묵어가도 좋겠다.

 

▲ 도심 속 한옥마을, 남평문씨본리세거지    


남평문씨본리세거지(대구민속문화재 3호)는 도심 속 한옥마을로 유명하다. 흙담이 둘러싸인 마을에 수봉정사, 광거당 등 멋스런 고가가 줄을 잇는다. 옛 골목에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필 때면 전국에서 사진작가들이 몰려든다. 5분 거리에 벽화인지 진짜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마비정벽화마을이 있어서 함께 둘러볼 만하다.

 

▲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풍경이 아름다운 화원동산 전망대  


호젓한 여행지로 사문진나루터와 화원동산을 추천한다. 우리나라 최초로 피아노가 들어온 곳으로 알려진 사문진나루터가 휴식 공간으로 복원됐다. 옛날 보부상이 허기를 달래던 주막촌은 소고기국밥 맛이 기가 막히다. 국밥 한 그릇 먹고 화원동산 숲길을 거닐면 금상첨화다. 화원동산은 화원이라는 이름답게 계절 따라 다양한 꽃이 피어 꽃동산을 이룬다. 전망대에 서면 금호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 SNS 사진 명소, 하목정  


달성 하목정(대구유형문화재 36호)은 SNS 사진 명소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이종문이 세운 지 400년이 넘었다.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머무른 인연으로 하목정이라는 이름을 직접 써준 것이라고 한다. 배롱나무꽃이 피는 계절이면 인생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당일여행 : 시간여행 코스_ 도동서원→한훤당고택→남평문씨본리세거지→마비정벽화마을 / 힐링코스_도동서원→사문진나루터→화원동산→하목정

 

○ 1박 2일 여행 : 첫날_도동서원→한훤당고택→남평문씨본리세거지→마비정벽화마을 / 둘째날_사문진나루터→화원동산→디아크→하목정

 

○ 관련 웹 사이트

 - 달성군 문화관광 www.dalseong.daegu.kr/new/culture

 - 달성군시설관리공단 www.dssiseol.or.kr

 

 

○ 주변 볼거리 : 비슬산자연휴양림, 국립대구과학관, 대구수목원, 송해공원 / 관광공사_사진제공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국내여행
[테마기행] 만해 ‘한용운’을 찾아
1/3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