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의 자연 속에서 학문과 사색의 즐거움을 찾는 경주 옥산서원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이성훈 | 기사입력 2019/09/23 [09:50]

태고의 자연 속에서 학문과 사색의 즐거움을 찾는 경주 옥산서원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이성훈 | 입력 : 2019/09/23 [09:50]

[이트레블뉴스=이성훈 기자] 조선 시대 유교 교육기관이자 명문 사립학교인 경주 옥산서원(사적 154호)은 회재 이언적의 덕행과 학문을 기리고 배향하는 곳이다. 풍광 좋은 안강의 자계천에서 숲과 계곡이 가장 아름다운 자리에 있다. 역락문을 지나 무변루, 구인당, 민구재와 암수재까지 작은 문고리 하나 무심히 지나칠 수 없을 만큼 회재의 학문적 열정이 스며들었다. 엄격한 강학과 성현의 문화가 만나는 옥산서원에서 학문과 사색의 즐거움을 찾았다.

▲ 회재 이언적의 덕행과 학문을 기리고 배향하는 옥산서원


회재 이언적은 김굉필, 정여창, 이황, 조광조와 함께 동방5현으로 꼽히는 조선 시대 성리학자다. 1514년 문과에 급제한 뒤 이조정랑, 밀양부사 등을 거쳐 높은 벼슬에 오르며 승승장구했지만, 두 번이나 정변에 밀려 낙향하는 불운을 겪었다. 회재가 택한 곳은 본가가 있는 양동이 아니라 독락당이다.

▲ 경주 옥산서원 구인당 대청에서 자옥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는 직접 구상하고 지은 독락당에서 약 7년간 기거하며 성리학 연구에 전념했다. 회재 사후 19년이 지난 1572년, 후손들이 독락당 인근에 옥산서원을 세웠다. 회재의 삶이던 성리학은 퇴계 이황에게 이어져 영남학파 학풍의 뼈대를 이루고, 그를 기리는 옥산서원은 사액을 받았다.

 

▲ 울창한 숲과 계곡이 아름다운 옥산서원    


옥산서원 앞에는 사철 마르지 않는다는 자계천이 흐른다. 회재가 이름 붙이고 퇴계가 썼다는 세심대(洗心臺)는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구하라는 뜻이다. 회재가 이 천혜의 자연을 얼마나 아꼈을지 짐작할 만하다. 거대한 너럭바위 사이로 힘차게 들리던 물소리가 서원 안으로 들어서니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강학에 몰두하는 데 거친 자연의 소리가 거슬리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사라지고, 적막한 고요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무변루 통문을 지나 돌계단에 올라서면 강학 공간의 마당이다. 마당은 휴식 공간인 무변루와 강당인 구인당 사이에 기숙사인 민구재와 암수재가 양쪽에 끼워진 정방형 공간이다. 전학후묘는 여느 서원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기품 있는 공간 배치가 돋보인다.

 

▲ 옥산서원으로 들어가는 역락문


옥산서원으로 들어가는 정문은 역락문(亦樂門)이다.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 가운데 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에서 따온 이름이다. 멀리서 벗이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의미다. 여러 해석 중에 출세가 목적이거나 남이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성숙을 위해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먼 곳에서도 사람이 찾아온다는 뜻이 가장 선명하게 다가온다.

 

▲ 구인당에서 바라본 무변루    


무변루(無邊樓)는 서원 건축에서 접하기 어려운 누마루가 눈길을 끈다. 2층으로 된 무변루는 총 7칸이지만, 마당에서는 5칸처럼 보인다. 통나무 계단으로 오르는 누마루는 가운데 3칸이 대청이고, 양쪽에 온돌방이 있다. 배움에 끝이 없다는 무변루는 서원 밖 경관을 차단하는 판문의 푸른색이 폐쇄적인 느낌이지만, 판문을 열어젖히면 푸른 자옥산과 자계천이 펼쳐진다니 상상만 해도 아름답다.

서원의 규율과 위계가 엄격해서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외부와 만남을 삼갔다는 이야기가 실감 난다. 무변루로 가는 나무 계단은 난간이 없어 올라가기 어려울 듯한데, 내려올 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휴식에서 학업으로 돌아오는데 그보다 좋은 긴장감이 없었을 것이다.

 

▲ 난간이 없어 아찔한 무변루 계단    


무변루에서 마주 보이는 구인당(求仁堂)은 회재가 저술한 《구인록》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회재는 “오상(五常)의 으뜸은 인(仁)이며 이것이 심덕(心德)의 전부요, 만선(萬善)의 근본”이라고 했다. 강의와 토론이 열리던 구인당은 대청 3칸과 양쪽 온돌방으로 구성된다. 구인당에는 내로라하던 대가들의 친필이 있다.

강당 처마에 걸린 옥산서원 편액은 추사 김정희, 대청에 걸린 옥산서원 편액은 문신이자 명필 이산해의 글씨다. 마루 안쪽에 걸린 구인당 편액은 무변루와 함께 한석봉의 글씨다. 한 획 한 획 힘차고 믿음직한 글씨를 보면, 인(仁)의 선비 정신에 강한 호기심이 생긴다.

 

▲ 추사 김정희가 쓴 옥산서원 편액    


구인당과 무변루 사이 좌우에는 기숙사인 민구재와 암수재가 있다. 민구재(敏求齋)는 민첩하게 진리를 구하다, 암수재(闇修齋)는 드러나지 않게 묵묵히 수양하다라는 뜻이다. 민구재 툇마루에 앉아 바라본 네모난 하늘이 서원의 기운만큼 반듯하고 고요하며 아름답다. 그 안에 담긴 하늘과 산과 나무까지 옥산서원의 품위를 닮았다.

 

▲ 툇마루에 앉아 바라본 하늘이 고요하고 아름답다    


서원은 1574년 선조에게 옥산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에도 살아남은 47곳 가운데 하나인 옥산서원에는 보물급 문화재가 많다. 회재가 벼슬살이하며 받은 교지, 독락당과 강계에 유배 중이던 시기에 저술한 책 등이다. 국보인 《삼국사기》 본질 9책 50권이 옥산서원유물관에 있지만, 열람이 불가능하다. 또 《동국이상국전집》을 비롯한 고서 4000여 권, 호구단자와 명문, 도록 등 고문서 1156건, 《회재선생문집》 책판 1123판 등 무형 유산과 기록 유산 6300여 점이 있다.

 

▲ 역락문을 지나 구인당까지 회재의 학문적 열정이 스며든 옥산서원  


옥산서원 앞 계곡의 외나무다리를 건너면 회재가 살았던 경주 독락당(보물 413호)으로 가는 길이다. 회재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지내던 집의 사랑채다. 토담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 독락당은 숲과 계곡을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한 자연 친화적인 건축양식이 돋보인다. 마루와 사랑방으로 구성되고, 마당에서 바라본 풍광이 그림 같다.

▲ 마당에서 본 독락당 풍광이 그림 같다  


엄격한 균형미와 폐쇄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옥산서원과 확실히 비교된다. 무위자연을 존중하며 학문과 수양에 전념하고자 한 회재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겼다. 독락당은 안채와 사랑채, 별당, 사당, 공수간 등을 갖춘 살림집이다. 옛 독락당은 사랑채를 칭했지만, 지금은 집 전체를 의미한다. 독락당과 공수간 사이 골목은 토담으로 이어진다. 타박타박 걸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독락당에서 감탄을 자아내는 곳이 있다. 첫째, 독락당 옆쪽 담장에 살창을 달아 대청에서 냇가를 바라보도록 한 설계다.

 

▲ 대청에서 냇가를 바라볼 수 있도록 토담에 살창을 만들었다  


토담에 뚫린 살창은 지금 봐도 신선하고 멋진 발상이다. 둘째, 독락당 뒤쪽 바위에 긴 기둥을 세워 만든 계정이다. 계곡 가까이 지은 정자로, 세속에 지친 마음에 위안을 주는 푸른 숲과 맑은 계곡을 품으려는 회재의 노력이 느껴진다. 계정 난간에 기대앉으면 계곡에서 청아한 바람이 불어온다.

 

▲ 푸른 숲, 계곡과 어우러져 자연 그 자체인 독락당의 계정    


회재가 태어난 서백당이 있는 경주 양동마을(국가민속문화재 189호)은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집성촌으로 전형적인 양반 마을이다. 서백당, 무첨당, 관가정, 향단, 심수정 등 기와집과 초가 150여 채가 있다. 심수정(국가민속문화재 81호)은 형인 회재 이언적을 대신해 벼슬을 마다하고 노모를 봉양한 농재 이언괄 공의 효심을 추모해서 지었다. 양동마을에서 가장 큰 정자로, 오래된 정원과 함께 고색창연하다.

 

▲ 양동마을에서 가장 큰 정자인 심수정에서 본 마을 풍경    


독락당에서 북쪽으로 700m쯤 올라가면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국보 40호)이 도도하게 서 있다. 정혜사 터에 남은 9세기 통일신라 석탑으로, 높이 5.9m에 이른다. 불국사 다보탑,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과 더불어 우리나라 이형 석탑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조형미가 빼어나 볼수록 신비롭고, 예술적인 감동을 준다.

 

▲ 독특한 양식과 빼어난 조형미를 보여주는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 당일여행 : 옥산서원→독락당→정혜사지 십삼층석탑→양동마을

 

○ 1박 2일 여행 : 첫날_옥산서원→독락당→정혜사지 십삼층석탑→양동마을 / 둘째날_양동마을→동궁과 월지→경주 대릉원→황리단길

 

○ 이색체험 : 선비 옷 입기 체험 5~10월 토·일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옥산서원 관람 시 차와 떡 제공.

 

○ 주변 볼거리 : 옥산세심마을, 첨성대, 천마총, 경주 최부자댁, 교촌마을 / 관광공사_사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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