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트레블뉴스=심명숙 기자] 한경 작가의 지구촌 오지 여행기
다나킬 사막과 에르타알레 활화산 에티오피아 메켈레로 가는 중간에 쨍쨍 내리쬐던 날씨가 검은 먹구름에 휩싸이더니 갑자기 요란한 천둥 번개를 치며 굵은 빗줄기를 쏟아냈다. 비가 좀체 내리지 않는 건기에 비를 만난 것은 우리의 행운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동전만 한 우박이 작은 미니버스 지붕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어찌나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지 잠시 아이처럼 신이 나기도 했지만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비와 우박에 조난 당할까봐 겁도 나고 걱정도 되었다. 금세 비포장도로는 흙탕물에 쓸려 난장판이 되더니 우리를 태운 미니버스가 밀려 내려온 토사와 바위에 빠져 옴짝달싹도 하지 않는다. 모두 차에서 내려 밀어도 소용이 없었다. 다행히 언덕 위, 민가에서 몇 사람이 연장을 가져와 50여 분 실랑이 끝에 겨우 차가 빠져나왔다.
온통 흙이 뒤범벅된 주민들에게 얼마라도 사례를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기사도 주민도 가볍게 돌아서는 모습을 보니 그들만의 순박한 유대감과 인간적인 정이 느껴졌다. 변화무상한 대륙에 사는 사람들의 생존방식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유소가 없는 오지여서인지 자동차 연료를 플라스틱 통에 담아 미니버스 지붕에 싣고 다니는 것을 보니 옛날 등잔불을 밝히기 위해 석유를 병에 사 오시던 우리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얼마를 갔을까 제법 넓은 개천이 조금 전 내린 비로 범람하여 차들도 사람들도 건너지 못하고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우리 차도 뒤이어 멈춰 섰고 그 덕분에 우리는 사금 캐는 소녀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플라스틱 통을 반으로 갈라 채로 쓰고 있는 듯 손에는 모두 노란 플라스틱이 들려있었다. 우리를 보고 수줍어하며 서로의 등에 숨는 소녀들은 한껏 모양을 낸 머리에 화려한 문양의 옷을 입고 있었다. 가슴에는 달랑거리는 작은 유리병이 하나씩 마치 목걸이처럼 매달려 있었다. 사금을 넣는 유리병이란다.
금을 캐지만, 일확천금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고 그저 소박한 모습이었다. 어느 날 저 앙증맞은 유리병에 사금이 가득 차서 저들에게 기쁜 날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우리는 에르타알레로 가기 위해 로비에 모였는데 1시간째 교통통제를 하여 출발이 지연되고 있었다. 호텔 앞 스타디움에서는 함성이 들려오고 길에는 온통 붉은 깃발과 국기를 든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호텔 직원이 말하기를 “오늘은 에티오피아와 오랜 분쟁으로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에리트레아와 평화조약을 맺는 역사적인 날”이라는 것이다. 로비에 있는 대형 티브이에서는 그 모습을 실시간 중계방송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에리트레아라는 나라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역사적 현장에 있었다는 인연으로 에리트레아의 아픔과 고난의 역사를 여행 끝난 후에 인터넷에서 찾아 읽었다. 1962년 이후 장장 30년을 끌어온 에리트레아 독립투쟁은 마침내 결실을 보아 1993년 5월 24일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했고, 아프리카에서 53번째 독립국이 된 나라였다. 독립 이후에도 에티오피아와 국경 다툼으로 인해 분쟁이 끊이지 않는 나라였다. 지금 우리 일행이 가고자 하는 에르타알레 산은 ‘연기를 뿜는 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두 나라 국경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에르타알레 화산은 120만 년 전부터 시뻘건 용암이 끓어오르는 활화산으로, 에티오피아 여행에서 꼭 봐야 한다고 추천될 정도로 유명한 여행지이다.
우리 일행은 여러 대의 지프에 4명씩 나눠 타고 에르타알레로 향했다. 5시간을 달려 에르타알레로 가는 입구 다나킬 백사막에 도착했다. 사막에 도착하자 물 만난 고기처럼 젊은 운전자들의 질주 본능이 나타났다. 서로 따라잡으며 앞서거나 뒤서거나 모래바람을 휘날리며 60km 이상으로 달리는 레이싱은 은근히 신이 났고 모래바람이 휘날리는 그 광경은 장관이었다. 모래사막이 끝나자 처음 보는 생소한 흑 사막 풍경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다. 모두 그 모습에 탄성을 지르며 연신 카메라를 누르고 내려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특히 용암이 용트림하며 흘러간 갖가지 형태의 문양은 거대한 예술작품이었다. 주름 잡힌 채 굳어있는 바위를 보니 뜨거운 마그마가 흘러내리던 순간이 상상이 되었다. 광활한 평원을 보니 얼마나 대단한 위용의 화산 폭발이었는지 짐작이 갔다. 끝없이 펼쳐지는 대지에 녹색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흑 사막을 하염없이 보고 있노라니 감탄했던 좀 전의 마음이 문득 저주받은 죽음의 땅인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순간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에르타알레산이 점점 가까워지자, 유황 냄새가 진동하며 활화산의 위용을 드러냈다.
운전기사는 주변 상황과는 아랑곳없이 엎어질 듯 요란하게 기우뚱거리며 곡예 하듯이 울퉁불퉁한 용암 위를 달린다. 그런 운전 솜씨에 한편으로는 감탄이 나왔지만, 운전자 표정을 보니 그 역시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외부 온도를 재는 숫자는 점점 오르더니 46도를 찍는다.
냉방이 잘 되는 차 안에서도 등에 땀이 차는데 용암 사막에서 원시인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불가사의한 생존이 놀라웠다. 교통수단이 없는 오지인 탓에 어쩜 저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난 반경을 벗어나 보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많은 걸 보고 느끼며 드디어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베이스캠프라고 해야 화산 돌덩이를 얼기설기 담처럼 쌓고 막대기 몇 개를 지붕에 얹어 햇빛을 가린 정도의 쉼터다.
온갖 쓰레기와 낙타 배설물들이 흙먼지와 뒤섞여서 바람에 날리고 있는 베이스 캠프장 마당은 온통 난장판이다. 특히 마구 버려진 페트병과 음료수 캔 등 산업 쓰레기 문제는 이곳에서도 심각했다. 우리 일행은 현지 여행사 직원들이 만든 파스타와 샐러드 샌드위치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오후 6시 에르타알레 화산 야간 산행을 시작했다. 낮에는 너무 무덥고 뜨거워서 산행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야간 산행을 하는데 취침할 때 매우 추우니 보온을 위한 옷과 슬리핑백, 후래쉬를 챙기라고 했다. 물은 1리터 정도만 챙기면 된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넉넉하게 1리터를 더 들고 갔다.
검은 모래사막을 걷는 산행 초반부터 발이 빠져 힘이 들었지만, 활화산을 보고 더군다나 활화산 옆에서 비박을 한다니 겁도 났지만, 호기심도 컸다. 아침에 평화조약을 맺는 현장을 보았지만, 아직도 이 오지까지 평화 분위기가 전달되지 않은 듯했다. 에리트레아와의 분쟁 접경 지역이어서인지 소총으로 무장한 경호원 두 명이 우리 일행을 앞뒤에서 경호해 주고 있었는데 왠지 긴장감이 감도는 살벌한 기분이 들었다. 모두 단단히 각오하고 걷기 시작했지만,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우리 일행들은 점점 지쳐서 몇 발짝 걷다가 쉬기를 반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녁이라고 하지만, 46도를 찍은 날의 열기가 남아있는 그곳에서 등반하고 있으니 죽을 맛이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발밑 용암에 넘어지기라도 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게 뻔했다. 말이 길이지 사방이 길로 보여 자칫하면 엉뚱한 곳으로 갈 판이었다. 우리를 이끄는 인솔자들도 길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인근에 산다는 13살 소년 데이빗을 길잡이로 내세웠다. 달랑 물 1통을 들고 변변한 신발도 안 신은 13살의 소년은 뼈만 남은 앙상한 체격으로 앞장서 걸었지만, 우리 일행이 쉬면 저도 피곤한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눕는 모습을 볼 땐 안쓰러웠다.
사람들은 점점 지쳐가고 사방은 캄캄해져 헤드랜턴이 비친 발밑 불빛만 보고 걸었다. 그래도 제법 잘 걸어 왔는데 갑자기 내 몸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저녁에 먹은 음식이 이상했던지 설사와 구토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땅히 숨을 곳도 없는 위험한 지형에서 반복되는 난처한 상황에 부닥치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더구나 탈수증세로 속이 울렁거리더니 심장이 뜨거운 연통이 된 듯 터질 것 같이 답답하고 곧 숨이 멈출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비틀대는 나를 부축하던 남편마저 다리가 풀려서 헉헉거리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 일행이 남편까지 걱정하는 소리를 들으니, 공포심은 극에 달했다.
누가 누구를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처지에서 나는 내 몫으로 들고 온 물은 다 마셨고 남편이 몇 모금 남은 물을 건네주었지만, 이제는 물도 삼킬 수 없었다. 뒤에서 경호원은 앞으로 가라고 재촉하며 서 있었지만, 나의 상태는 이미 염치를 차릴 상황이 아니었다. 가이드에게 이 자리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가 하산할 때 합류하겠다고 했더니 말도 안 된다며 조금만 가면 된다고 채근만 했다.
난처하고 미안하기도 했지만 한 편 야속하기도 했다. 사방이 캄캄하여 무슨 짐승이 뛰어나올지도 모르고, 국경지대여서 반군끼리 서로의 입장에서 납치해 갈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들면서 얼마 전 독일인이 총에 맞아 죽었다는 말이 생각나서 공포심은 극에 달했다. 이러다 이 용암 위에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거듭 밀려왔지만, 너무 지친 나머지 나는 무작정 평평한 용암 바위를 골라 누웠다. 누워서 하늘을 보니 처연하게 보름달이 떠 있었다. 순간 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살아온 날들과 인연의 얼굴들, 저 하늘에 계신 부모님 얼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다시 일어났지만 제대로 걷지 못하는 모습이 딱했던지 소총으로 무장한 경호원이 야영 캠프장까지 부축해 줬다. 얼마나 고마운지 다음 날 아침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때 그 경호원에게 과하다 싶게 사례를 했다. 3시간 산행으로 9시 도착 예정이었지만 결국에는 6시간 걸려 자정에 우리 일행은 활화산 100미터 전방 야영 캠프장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100미터만 가면 용암을 볼 수 있다고 재촉했지만, 난 단 10미터도 더 갈 수 없었고 또 너무 지쳐서 용암도 보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렇게 사투를 벌이며 올라간 에르타알레의 용암이 불타는 농염한 열애 장면을 끝내 보지 못하고 하산했다. 모든 사랑의 끝점, 그것은 결국 상처로 남을 뿐이라는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불타는 정사가 끝난 후 죽음으로 남아있는 검은 용암을 바라보니 한때는 사랑한다고 말했다가 떠나간 얼굴이 떠오르며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르타알레의 유혹-
아직도 열애 중이라는 무성한 소문에 다시 도진 관음증 그 붉은 꽃술을 향해 가는 야간 산행
은밀한 정사는 유황 냄새를 풍기며 유혹과 공포심을 자극하고 46도의 날씨 여섯 시간의 사투에 용암 사막에 묻힐 것 같은 반 가사 상태
뜨겁게 엉겨 온몸이 녹아내리는 화려한 정사를 본다 한들 무슨 대수인가?
문득 모든 게 부질없다는 마음에 100m 전방에서 죽은 듯 땅에 눕는다
천연덕스레 달은 밝고 비틀거리는 혼미한 의식 속에 얼비치는 얼굴들 살아온 세월의 껍질들이 허물처럼 벗겨져 내렸다
울컥울컥 올라오는 잿빛 얼굴 한때는 뜨거웠던 불꽃 그것은 이미 기억 속의 상처였다.
간단히 챙겨온 세면도구는 무슨 사치이며 소금기에 절어진 옷조차 갈아입지 못하고 들쥐가 옆을 오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저분한 매트 위에 그냥 누웠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휘영청 밝고 다리 근육은 꼬여왔지만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3시간 비박 후 새벽 3시에 하산한다고 하니 막상 내려갈 걱정이 태산 같았다. 아마도 내가 살면서 경험한 가장 무섭고 두렵고 힘든 하루였다.
내 나이에 무모한 여행 일정을 잡은 것은 아닌지, 과연 아프리카 여행을 잘 끝마칠 수 있을까 걱정이 몰려왔지만, 곧바로 지쳐서 잠이 들었다.여행이란 힘든 체험을 하기 위한 고난의 행군이다. 세계여행에 경험이 있는 사람은 한 번쯤은 해볼 만한 오지 여행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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