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볼만한 곳 '설화속 공간 그대로인 오천읍'

연오랑 세오녀 설화 속 일월지, 원효대사와 혜공선사 재미난

박소영 | 기사입력 2008/10/29 [12:32]

가볼만한 곳 '설화속 공간 그대로인 오천읍'

연오랑 세오녀 설화 속 일월지, 원효대사와 혜공선사 재미난

박소영 | 입력 : 2008/10/29 [12:32]
오천읍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연오랑 세오녀 설화 속 일월지, 원효대사와 혜공선사의 재미난 속이야기가 숨어있는 오어사, 그리고 포은 정몽주의 충절이 숨쉬는 역사적 공간이다. 한편 대한민국 해병대의 젊은 패기와 열정이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

산사의 가을 '오어사와 운제산'
운제산은 원효대사가 수도할 때 기암절벽에 있는 원효암, 자장암 두 암자를 구름다리로 오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효, 자장, 혜공 등 고승들이 이 산에서 수도하였다고 전해진다. 운제산 산자락을 병풍처럼 두르고 오어지를 앞에 둔 그림같은 사찰 오어사. 강 같이 큰 호수 오어지는 푸르다 못해 진청색 빛깔이다. 이 곳을 방문하는 누구나 오어지의 신비로운 매력에 푹 빠진다. 1964년에 완공된 만수면적 12만평에 수량도 500만톤에 이른다. 운제산의 아름다운 산세와 어우러져 승경을 빚어낸다.

▲ 오천읍 오어사 풍경     © 박소영

오어사는 신라 26대 진평왕대에 창건된 사찰로 원래는 항사사라 불렸다. 원효대사와 혜공선사가 이 곳에서 수도할 때 법력으로 개천의 고기를 생환하도록 시합을 하였는데 그 중 한 마리는 살지 못하고 다른 한 마리는 살아서 힘차게 헤엄쳤다고 한다. 그러자 그 고기를 서로 자기가 살린 고기라고 하여 그때부터 「나 오(五) 고기 어(魚)」자를 써서 오어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보물 제1280호인 오어사 범종을 비롯 경북 문화재 자료 제88호 대웅전 등 문화재 감상은 또 하나의 포인트이다. 

위치 : 시내에서 포항제철을 지나 929번 지방도로로 오천과 문충리 방면으로 24km 정도 가면 오어사에 닿는다. 주말 나들이 코스로 전혀 손색이 없는 곳으로 타지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는 곳이다.

일월지와 연오랑세오녀
푸르른 하늘이 일월지 안에 있다. 가을, 연꽃이 만개한 일월지 나무다리를 한발짝 한발짝 건너본다. 해병대 부대 안에 있는 일월지는 연오랑 세오녀 설화가 담겨있는 곳이다. 신라 시대부터 ‘해달못’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식으로 부르게 되면서 일월지로 이름이 바뀌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못이라 하여 천제지 또는 해와 달의 빛이 다시 돌아왔다고 광복지라고도 불린다.
(직경이 약 250m, 폭이 약 150m로 총면적 5,000평 정도의 원형을 이루고 있다.)
매년 10월 연오랑 세오녀 설화를 재현하여 지역 주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일월사당에서 올린다. 방문 3일전 예약필요 ( 해병대 054-290-3181~3)  위치 : 포항시 남구 오천읍 용덕리(해병대 제9227부대 내)

▲ 일월지와 연오랑세오녀     © 박소영

포항의 대표적인 설화가 바로 ‘연오랑세오녀’다. <삼국유사> 의하면 신라 제8대 아달라왕 즉위 4년 정유에 동해가에 연오랑 세오녀라는 부부가 살았다. 바다에서 고기잡는 어부 연오랑과 베짜며 옷짓던 세오녀는 금실 좋기로 소문난 부부였다. 하루는 연오랑이 바다로 나가 해조를 캐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위 하나가 연오랑을 위에 태운 채 일본으로 갔다.

일본 사람들이 그를 보고 이는 뛰어난 인물이라 생각해 곧 임금으로 삼았다. 세오녀는 지아비가 오지 않는 것이 이상해 계속 찾던 중 지아비가 벗어놓은 신을 보고 바위 위에 올라갔다. 그랬더니 바위가 세오녀를 업고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갔다. 섬나라 사람들이 바위를 타고 건너온 세오녀를 보고 놀라서 궁중에 알렸고, 세오녀는 다시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뒤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갑자기 빛을 잃고 천지가 어두워 졌다. 이에 놀란 아달라왕은 예언자에게 그 까닭을 물었고 예언자는 “해와 달의 정기(精氣)가 우리나라에 와 있다가 지금은 일본으로 갔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섬나라에 건너간 연오랑과 세오녀를 이 땅에 다시 불러오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연오랑과 세오녀는 “우리는 이미 하늘의 뜻을 좇아 이곳에 와서 왕과 왕비가 되었으니 다시 갈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곧 “왕비가 손수 짠 비단 한필이 있으니 가지고 가서 내가 살던 못가에 단을 쌓고 나뭇가지에 이 비단을 걸고 정성을 모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라”며 비단을 주었다. 사신이 돌아와 그대로 했더니 신기하게도 신라땅에는 해와 달이 다시 빛을 찾았다.

이후 그 비단은 어고에 간직되어 국보가 되었다. 이때부터 제사를 지냈던 못을 ‘일월지’라 하고 이 지역을 ‘도기야’라고 했다. 이 설화의 주인공을 기리기 위한 연오랑세오녀상이 호미곶 해맞이광장에 세워져 있다.

충절이 숨쉬는 오천읍
오어지에서 발원한 냉천이 북쪽으로 흘러 영일만으로 흐르는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충절의 고장 오천입니다.”라는 안내석을 만나게 된다.

▲ 고려시대의 충신 포인 정몽주 선생     © 박소영

고려시대의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이 고려 충숙왕 6년에 풍치가 아름다운 오천읍 문충리에서 태어났으며 탄생 670년 만에 오천읍 청년회 주관으로 2007년 5월 27일 제1회 ‘포은문화축제’를 개최하여 경로잔치와 더불어 지역주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바 있다.

오천읍 입구인 구정리 124-2번지에 가면 정몽주 선생의 출생과 성장의 흔적을 담은 ‘포은선생 유허비’를 만날 수가 있다. 선조들의 높은 뜻을 기리고 오천읍이 배출한 충절의 표상 포은 정몽주 선생의 절개와 정신을 되새김으로써 충효사상을 새롭게 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오천읍민들의 단합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포항제철과 철강공단 그리고 해병부대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현재이고 보면 옛 선현들의 충절과 더불어 나라를 위하는 마음은 일맥상통하지 않나 생각되어진다.

해병혼이 살아있는 곳
아침7시만 되면 어김없이 해병부대의 기상 나팔소리로 조용한 아침이 부스스 잠을 깬다. 피 끓는 젊은이들의 기합소리와 어스럼녘이면 사격훈련 소리로 온 산을 울려댄다.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 이라는 슬로건이 말하는 것처럼 누구나 해병대가 될 수 없고 치열한 경쟁을 꿇고 입대하여 훈련을 마친 대원들은 해병대원이 된 것에 대하여 무한한 자긍심을 갖고 있다. 주말 아침이 되면 용덕리에 위치한 서문앞과 사거리 일대는 젊은이들의 거리로 변모한다. 검게 탄 구릿빛 피부와 멋진 군복의 조화 그리고 빨간색 옷을 입은 열혈 청년들이 외박외출, 면회로 인해 만남의 장이 펼쳐지는 것이다.

연인들의 다정한 모습과 가족 간의 살가운 만남, 동기들 간 오랜만의 외출로 인한 설레임으로 온 거리가 살아 숨을 쉬며 사람의 물결로 넘실대는 활기와 패기가 넘쳐 흐르는 곳이다. 해병대는 진주와 제주의 공비토벌, 한국전쟁에서 정예부대로 활약하여 “귀신잡는 해병”, “무적해병”의 명성도 얻었다.

전투부대로는 처음으로 청룡부대가 월남전에 참가하여 혁혁한 전공도 세웠다. 그 이후로도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최근엔 “해병대 캠프”가 포항시민은 물론 온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어 해병혼과 절제된 훈련방식을 체험하려는 희망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

옛시골의 정취가 살아있는 오천장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신경림의 시 ‘파장’의 일부 내용이다.

얼굴만 봐도 흥겹고 한결같이 친구같은 얼굴들이 그득한 곳이 시골장이 아닐까?
1920년경에 이 곳에 시장이 개설되어서 장터라 부르게 되었고 현재는 오천읍의 상업중심지와 세계리의 중심지이다. 60여개의 상가가 형성되어 있으며 5일마다(5, 10, 15, 20, 25, 30) 정기 장날이다.

장이 설 때마다 오고 가는 흥정소리와 더불어 할머니들의 작은 바구니에 담겨진 각종 채소들이며 싱싱한 농산물들, 흘러간 옛노래의 흥겨움과 더불어 아직도 펑~펑~대며 터지는 박상(옥수수) 튀기는 소리, 최신 패션이 골라 골라 오천원이라는 목청좋은 마케팅이 활개를 치고 골목 한켠에선 촌로들의 장기판이 여유로움을 더해주는 곳이다.

▲ 옛시골의 정취가 살아있는 오천장     © 박소영

포항 시가지를 중심으로 한 읍 단위 오일장 중에서 오천읍의 오일장은 가장 활성화된 시장 중의 하나일 것이다. 도시와 시골의 모습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장세가 갈수록 확장되는 듯한 느낌이다. 기존의 장터에서 새로 난 4차선 도로와 경찰서 맞은편으로 그 장세가 날로 뻗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파장 때가 오면 막걸리를 마셔대며 하루를 정리하고 흥청대는 시장판이 사람 사는 아름다운 향기로 넘실대는 곳이다.       
www.ipoha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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