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만 꼭 기억해야 할 역사, 군산근대역사박물관

무수한 약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거리는 생생한 고통의 기록

이성훈 | 기사입력 2019/12/31 [08:37]

아프지만 꼭 기억해야 할 역사, 군산근대역사박물관

무수한 약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거리는 생생한 고통의 기록

이성훈 | 입력 : 2019/12/31 [08:37]

[이트레블뉴스=이성훈 기자] 일제강점기 참혹한 수탈이 할퀴고 간 군산은 상처투성이다. 그러나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된다던가. 무수한 약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거리는 생생한 고통의 기록이자,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됐다. 이 특별한 여행지를 천천히 걷다 보면 아픈 과거를 딛고 일어선 이들의 든든한 힘을 발견한다.

 

▲ 군산의 아픈 과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근대역사박물관 


조선 시대에 군산은 호남평야에서 거둔 세곡을 보관·수송하기 위한 조창이 설치된 경제적 요충지였다. 1899년 군산항이 개항할 무렵엔 무역항으로서 황금빛 미래도 꿈꿨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식민지 수탈의 근거지로 왜곡된 성장을 겪는다. 근대화의 상징인 기찻길이 놓이고 신작로가 뚫렸지만, 일제의 약탈을 위한 것이었다.

▲ 일제가 대륙진출을 목적으로 건설한 어청도 등대 


채만식의 장편소설 《탁류》에서도 서천 출신 정 주사가 군산에 가면 번듯한 직업을 구할 수 있다는 말에 가족을 데리고 똑딱선에 오른다. 정 주사는 이 화려한 근대도시에서 재산을 모두 잃고, 딸 초봉마저 팔아넘기듯 고태수에게 시집보낸다. 발버둥 칠수록 깊은 수렁에 빠진 초봉의 운명처럼 일제강점기 군산은 절망의 밑바닥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창씨개명 호적원부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이 같은 도시의 상처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로비에 들어서면 일제가 대륙에 진출할 정략적인 목적으로 건설한 어청도등대가 반겨준다. 3층 근대생활관에는 약 40㎢(1200만 평)에 이르는 구마모토농장의 토지 목록, 창씨개명 호적 원부 등 일제의 수탈과 탄압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가 다수 전시된다.

 

▲ 군산 최고의 번화가였던 영동상가를 재현한 거리  


일제강점기 군산의 다양한 풍경도 재현해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군산 최고 번화가였다는 영동상가 맞은편에는 산비탈로 쫓겨난 도시 빈민이 거주하던 토막집이 있어 대비된다. 한가운데 《탁류》에서 미두장으로 표현한 군산미곡취인소도 눈에 띈다.

 

▲ 1930년대 미곡시세가 적힌 칠판 

 

칠판에 적힌 당시 미곡 시세 현황을 보면 군산에서 7원 20전인 쌀이 오사카로 넘어가면 13원 40전, 시모노세키에선 15원 11전이다. 곡식을 사고팔며 생기는 시세 차익을 노린 미두가 성행한 이유다. 그러나 일확천금의 꿈은 오히려 조선 자본가의 몰락을 재촉했다. 소설에서 정 주사가 패가망신한 것도 미두 때문이다.

 

▲ 진포대첩 전시관으로 활용되는 위봉함 내부 


일제의 대규모 수탈을 눈앞에서 지켜본 만큼 군산의 독립운동은 거세고 뜨거웠다. 2층 독립영웅관은 군산에서 호남 최초로 일어난 3·1만세운동과 악질적인 일본인 농장을 대상으로 벌인 옥구 농민 항쟁을 다룬다. 독립운동가에게 감사의 글을 남기는 공간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느낀 점을 이야기해도 좋다.

 

▲ 옛 군산세관 전경 


본격적인 시간 여행은 박물관을 나서며 시작된다. 오른쪽으로 구 군산세관 본관(사적 545호)이, 왼쪽으로 구 일본제18은행 군산지점(등록문화재 372호)과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등록문화재 374호)이 이어진다. 이곳을 둘러보는 스탬프 투어를 추천한다. 자연스레 식민지의 아픈 역사를 체험하고, 완료 기념품으로 태극기 바람개비도 받을 수 있다. 스탬프 투어 지도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 1층 안내데스크에 있다.

 

▲ 호남관세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옛 군산세관 내부    


1908년에 지은 구 군산세관 본관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관 건물이다. 고딕 지붕과 로마네스크 창문, 영국식 현관과 벽난로의 흔적 등 유럽 건축양식을 혼합한 근대 일본식 건물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난다. 현재 호남관세전시관으로 활용돼 내부 관람도 가능하다.

 

▲ 과시하듯 천정을 높게 지은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내부    

 

같은 시기에 지은 건물 하나는 인문학 카페로 운영된다. 아이들이 읽기 좋은 그림책이 많고, 프렌치 불도그를 캐릭터로 내세운 기념품과 포토 존이 인기다. 개항 후 프랑스인의 애완견으로 처음 군산을 찾았다는 이 낯선 강아지의 사연도 재밌다.

 

▲ 인문학카페 정담의 인기포토존 


구 일본제18은행 군산지점은 군산근대미술관으로,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군산근대건축관으로 사용된다. 미술관 뒤쪽에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뤼순(旅順) 감옥을 재현한 공간이 있다. 벽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글귀가 선명하다. 1922년에 지은 조선은행은 당시 군산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 군산항 축항을 기념해 쌀가마니로 쌓아올린 기념탑  

 

사용하지도 않는 2층을 올리고 과시하듯 지붕을 높게 설계한 모양이 치졸하게 느껴진다. 건축관 한쪽에 1926년 군산항 축항 공사를 기념하며 쌓은 쌀가마니 사진이 있다. 기름진 호남평야를 옆에 두고 풀뿌리로 연명하기도 어렵던 이들에게 쌀가마니 탑은 어떤 의미였을까. 아이도 사진 앞에서 한참 걸음을 떼지 못한다.

 

▲ 일본식 건축물을 활용한 장미갤러리 


일본식 건물인 장미갤러리와 미즈커피를 지나 진포해양테마공원에서 스탬프 투어를 마무리한다. 공원에는 일제가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받지 않고 쌀 수백만 석을 배에 싣도록 설치한 군산내항 뜬다리부두(등록문화재 719-1호)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킨다. 전시관으로 활용되는 위봉함에선 세계 최초 함포 해전으로 기록된 진포대첩을 VR로 체험할 수 있다.

 

▲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받지 않고 쌀을 실을 수 있도록 고안한 뜬다리  


근대역사박물관에서 10분 남짓 걸어가면 테디베어뮤지엄군산을 만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테디 베어로 영국 런던, 프랑스 마르세유, 미국 뉴욕 등 세계 각국의 랜드마크를 재현했다. 부산 해운대와 남원 광한루, 군산 새만금의 풍경이 반갑다.

 

▲ 스탬프를 찍는 아이 

 

지역의 아픈 역사를 담아낸 전시도 마련했다. 군산항에선 일본으로 향하는 배에 쌀을 싣고 있다. 일본 군복을 입은 곰 인형의 경비가 삼엄하다. 일본 상인의 호화로운 주택은 만세운동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 아이들이 좋아하는 곰인형이 가득한 군산테디베어뮤지엄 


경암동철길마을도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다. 낡은 기찻길 옆으로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이 독특한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1970~1980년대 교복 대여소나 멋스런 흑백사진을 촬영해주는 스튜디오가 곳곳에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단연 불량 식품. 알록달록 자극적인 과자의 유혹에 엄마 아빠도 참기 힘들다.

 

▲ 아이들의 눈과 입을 사로잡은 추억의 불량식품 

 

온 가족이 뜨끈한 연탄불 주위에 둘러앉아 쫀드기를 굽고, 달고나도 만들어보자. 정겨운 군산의 맛이 내내 그리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 낡은 기찻길과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이 독특한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 당일여행 : 군산근대역사박물관→호남관세전시관→군산근대미술관→군산근대건축관→진포해양테마공원→테디베어뮤지엄군산→경암동철길마을

 

○ 1박 2일 여행 : 첫날_군산근대역사박물관→호남관세전시관→군산근대미술관→군산근대건축관→진포해양테마공원→테디베어뮤지엄군산→경암동철길마을 / 둘째날_고군산군도(신시도-무녀도-선유도-장자도)


○ 관련 웹 사이트

 - 군산시 문화관광 www.gunsan.go.kr/tour/index.gunsan

 - 군산근대역사박물관 http://museum.gunsan.go.kr

 - 테디베어뮤지엄군산 http://teddybear9000.com


○ 문의

 - 군산시청 관광진흥과 063-454-3320

 - 군산근대역사박물관 063-454-5953

 - 호남관세전시관 063-730-8721

 - 군산근대미술관 063-446-9812

 - 군산근대건축관 063-446-9811

 - 진포해양테마공원 063-454-7870

 - 테디베어뮤지엄군산 063-446-9000

  

○ 주변 볼거리 : 구불길, 금강철새조망대, 새만금방조제 / 관광공사_사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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