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 3.1운동 기념관 건립 촉구대회 개최

선조들이 대 일본 침략에 대한 비 폭력 항거를 일으킨 역사

이동구 | 기사입력 2013/05/28 [07:52]

탑골공원 3.1운동 기념관 건립 촉구대회 개최

선조들이 대 일본 침략에 대한 비 폭력 항거를 일으킨 역사

이동구 | 입력 : 2013/05/28 [07:52]
환국 문화원(김종갑 총재 69세)가 주관하는 탑골공원 3.1운동기념관 (지상3층 지하2층 연 면적 6,793,020㎡)건립 촉구대회가 2013년 5월 24일 오전11시 종로2가 YMCA 2층 소강당이자 친교실에서 개최됐다. 행사의 사회를 맡은 이건호 박사의 진행으로 시작된 촉구대회는 각계 각층의 유명인사들이 대거 참석하여 숭고한 선조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들려오듯 애국가 제창과 순국 선열에 대한 묵념으로 이어졌다.

경과 보고에 이어, 기념관 건립 추진 위원장인 김총재는 인사말을 통해서 티모르에 가서 무참히 학살하는 반군들에게 "왜 천하보다 귀한 생명들을 죽이느냐? 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인데? 나를 죽이고 저들을 죽이지 말라고" 말했을때, 총부리를 돌려서 3500여명의 생명을 구한 사실을 피력 하였다.

이어서 기념관 건립을 설계한 박흥식 설계사의 브리핑에 이어 ,박근혜대통령께 드리는 메세지를 본회 재정위원장인 전상봉 목사의 간곡한 호소가 있었고, 배영기 교수(범종교신문위원)의 국회의장에게 드리는 메세지 낭독에 이어, 격려사는 파리장서 최갑수 이사장(목사) 의, 새 지도 번지 만들기 켐페인을 시행하고 있음에 대해서, 일제가 만들어 놓은 지번이 물품운반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것을 해방후 지금까지도 사용 되고 있는것을, 길을 따라서 번지를 제정하게 해놓음으로 우편배달 및 일제의 손길에서 벗어나는 민족정신의 일환이 되었음을 격려사를 통해 밝혔다.

건물 설계양식을 한국식을 좀 벗어 난듯한 의견들도 있었으나, 좀더 발전하면서 토론을 해나가자고 하였고, 3시간 가까이 순서가 진행 되는 가운데 2층 강당을 꽉 메운 각 종교 단체 대표들이 상당수 참석 한가운데에 기독교 목사들이 많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뤘다.

순서에 따라서 본 기념관 건립의 문화 위원인 조현태(한미참전군인회이사장)위원의 결의문 선창에는 온 회중들이 두 주먹을 불끄 쥔채,일본 정부를 향한 함성이 울려 퍼졌고, 3,1운동 독립 선언서 낭독을 맡은 김승배회장의 선창으로 만세 3창을 목이 터질듯이 마치고 폐회를 선언 하고, 기념촬영을 하였다.

행사관계자는 고귀한 정신으로 본 기념관 건립을 위해서 갖은 고생을 하는 김총재의 뜻을 온국민들이 다함께 힘을 모아야 할 싯점에 대형 언론사들이 초청을 외면하는 행태는 지탄 받아야 마땅 하다고 주장했다.

본 행사를 총 지휘 하는 김종갑 총재에 대한 평가는 "누가 하란다고 해야 하고, 하지 말란다고 해서 하지않으며,매사를 볼때 국가와 민족이 가야 할길이 바르다고 판단되면 앞뒤를 보지않고, 행동으로 자신을 불태우면서 압장서는 그 불굴의 용기와 대담성은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않는, 그는 분명 선구자요, 선견자며,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독불 장군이라고들 칭송한다.

이날 행사장 분위기는 댓가를 원치않으면서,별로 유명세를 타지 않는 ,사회적으로 말한다면 별볼일 없는 분들 같은 사람들이 동서남북에서 행사를 참석하기 위해 모였으며,환국 문화원 김종갑 총재는 "그누구도 본공원에다 기념관을 건립하여, 후진들에게 선진들이 피 흘리며 이룩해놓은 역사의 자리에 민족정신의 교육장인 기념관을 짓겠다는 사람이 없기에 본인이 나서게 된 것이다" 고 설명했다.

김총재의 오늘 촉구대회가 있기까지는 탑골공원 3.1운동 기념관 건립을 위한 판단도 어제,오늘의 생각에서 나온것이 아니라고 했다. 1984년 7월31일자 조선일보 "한마디"코너에 당시 김총재가 향년 40세의 나이로 파고다 공원을 "탑골공원"으로 개칭 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후 1991년10월21일자 중앙일보에 문화재 관리국 문화위원들의 국가지정 문화재인 사적지로 지정하는 한편, 명칭을 탑골 공원으로 환원키로 결정하였다. 금년69세의 나이로 그의 가슴속에 타오르는 불굴의 의지와 용기는 또한번 일을 내고 있다고들 한다.

김 총재는 “선조들이 대 일본 침략에 대한 비 폭력 항거를 일으킨 역사가 숨쉬는 3.1운동의 발상지며, 기미독립선언문을 전 세계를 향해서 33인을 대표하여 선포한 정재영 선생의 용기 또한 후진들이 본받아야 할 것이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