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휴양지, 터키 안탈리아는 산타의 고향

성 니콜라스 교회 등 그의 발자취가 안탈리아주에 남아있어

박소영 | 기사입력 2016/12/14 [10:18]

신들의 휴양지, 터키 안탈리아는 산타의 고향

성 니콜라스 교회 등 그의 발자취가 안탈리아주에 남아있어

박소영 | 입력 : 2016/12/14 [10:18]

크리스마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누구일까? 아마도 대부분 그날의 주인공이어야 할 아기 예수가 아닌 어린이들이 자는 동안 굴뚝을 통해 들어와 걸어놓은 양말에 선물을 몰래 넣고 가는 산타클로스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풍성한 흰 수염에 두툼한 빨간색 털옷을 입고 순록 썰매를 끌며 얼음과 눈으로 가득한 겨울왕국에 사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그런데 이것이 정말 산타클로스의 본 모습일까?

 

▲ 산타클로스의 고향 안탈리아 _ 터키문화관광부    



사실 원조 산타클로스는 두툼한 털옷을 입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가 살던 곳은 1년에 300일 이상 따뜻한 지중해 연안, 터키 안탈리아 주의 소도시 뮈라(Myra)의 뎀레(Demre)라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산타클로스의 모델인 성 니콜라스는 바로 이 뎀레의 그리스정교회 주교였다. 서기 240년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성 니콜라스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활동에 사용했다. 그가 행한 수많은 선행 중 가장 유명한 일화는 지참금이 없어 결혼을 하지 못했던 이웃집의 세 자매를 도운 이야기이다.

 



성 니콜라스는 이들을 돕기 위해 깊은 밤 지붕으로 기어 올라가 굴뚝에 황금이 든 주머니를 떨어뜨렸는데 마침 그 주머니가 벽난로에 걸어놓은 양말에 들어갔다고 한다. 아침에 양말 속의 황금을 발견한 세 자매는 몹시 기뻐했고 이 황금으로 무사히 결혼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중세 이후 매년 성 니콜라스 축일(12월 6일) 전날 밤이면 니콜라스 주교로 분장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몰래 선물을 주는 풍습이 생겼고 이것이 산타클로스 이야기의 원형이 되었다.

 



그리고 성 니콜라스의 라틴어 발음인 상투스 니콜라스(Sanctus Nicolaus)가 변형되면서 오늘날의 산타클로스(Santa Claus)가 탄생했다. 산타클로스의 트레이드마크인 흰 수염과 붉은 옷은 1930년대 코카콜라 광고를 통해 탄생한 것이지만 붉은 옷은 성 니콜라스 주교가 입었던 사제의 의복인 수단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 뎀레의 성 니콜라스 교회



평생 어린이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섰던 성 니콜라스는 당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고 그가 서기 345년에 생을 마감한 이후 사람들은 그를 기려 그의 이름을 딴 교회를 지었다. 6세기에 지진으로 파괴되었으나 복원되어 지금도 뮈라에 가면 성 니콜라스 교회에 가볼 수 있다. 돔 형식으로 지은 교회의 내부에는 화려한 문양의 모자이크로 바닥이 장식되어 있다. 교회 앞에는 어린이들과 함께 서 있는 성 니콜라스의 동상이 있다. 이처럼 신들의 휴양지라 불리는 터키의 관광 수도 안탈리아주에는 원조 산타클로스, 성 니콜라스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 뎀레의 성 니콜라스 동상



산타클로스의 고향, 뎀레는 터키의 가장 현대적이고 고급스런 지중해 휴양지 안탈리아주에 속해 있으며 그 일대에는 아폴로 신전 유적으로 유명한 시데와 현재도 공연이 열리는 로마시대 원형극장이 있는 아스펜도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구름보다 높은 산 위에서 지중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올림포스, 물속에 잠겨버린 수중도시 게코와 등 다양한 유적지가 즐비해 있다.
터키문화관광부_사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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