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이 제네바에서 탄생한 까닭?

가녀린 19살 여인이 이렇게 기괴한 이야기를 썼다는 사실

박미경 | 기사입력 2014/04/23 [08:22]

프랑켄슈타인이 제네바에서 탄생한 까닭?

가녀린 19살 여인이 이렇게 기괴한 이야기를 썼다는 사실

박미경 | 입력 : 2014/04/23 [08:22]
컴컴하고 폭우가 쏟아지는 밤 매리 셸리(Mary Shelley)가 풀어놓은 이야기,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은 제네바의 지독한 악몽과 불길한 예감 속에서 탄생했다. 출판과 동시에 엄청난 성공을 가져온 이 소설이 세상에 알려지자 가녀린 19살 여인이 이렇게 기괴한 이야기를 썼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당혹스러워 하기도 했다. 곱슬대는 빨간 머리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레만 호수를 바라보던 깡마른 어린 소녀가 어떻게 이런 글을 쓴걸까? 이 질문에 대해 매리 스스로 조차도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1831년 에디션에 아이디어어 출처에 대해 쓰기도 했다.

▲ Geneva _ 프랑켄슈타인 스토리     

제네바(Geneva)로의 두 번째 여행 중이었다. 매리 고드윈(Mary Godwin)과 퍼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가 아들 윌리엄(William)과 매리의 이복 자매 클래어(Claire Clairmont)와 함께 제네바에 도착한 것은 5월이었다. 제네바로 향하는 도중 쥐라(Jura) 산맥을 넘으며 눈보라에 고생을 했던 터였다. 다음 날 아침, 매리는 창 밖의 거울같고 햇살의 황금 빛이 반짝대는, 천국같이 푸르른 사랑스러운 호수를 보며 막 알을 깨고 나온 새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며칠 뒤, 나폴레옹의 것을 복제한 마차를 타고 로드 바이런(Lord Byron)이 제네바에 입성을 한다. 망설임 없는 성격의 클래어가 런던에서 만난 로드 바이런의 매력에 반해 그의 뮤즈가 되고자 유혹의 눈길을 보내던 터였다. 그의 도착을 애타게 기다렸던 클래어는 두 남자를 소개하고, 바이런은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셸리에게 바로 호감을 갖게 된다. 두 사람 모두 세일링과 자유, 열정적인 토론을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큰 작용을 했다. 그러면서 매리와 셸리는 바이런이 빌린 맨션이 있는 콜로니(Cologny) 근처 항구쪽에 시골집 하나를 빌려 거처하게 된다.


오래지 않아 날씨는 변덕을 부리고 1816년 여름은 19세기 최악의 춥고 비가 잦은 날씨로 기록을 세운다. 지리한 비 때문에 독서 모임이나 갖자고 마련된 자리에서 이들은 유령 이야기 모음집을 함께 읽는다. 그러다 바이런은 각자 유령 이야기를 한 편씩 써 보자고 제안을 한다.

바이런이 데리고 다녔던 의사, 폴리도리(Polidori)의 노력은 비웃음을 샀고, 클래어의 시도도 금방 잊혀졌으며, 바이런과 셸리 역시 시시한 게임에 곧 지겨워지고 만다. 우리의 매리는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조차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리의 머릿속은 온통 공포에 대한 것으로 가득했다. 셸리가 아침마다 지긋이 그래, 이야기가 생각났소?라고 물어올 때마다 그녀는 아니요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바이런이 묵던 디오다티(Diodati) 맨션에서 활활타는 벽난로에 모여앉아 이 시인들이 루소의 사회 이론부터 신기술까지 방대한 토론을 하는 것을 듣고만 있던 매리에게 운명의 순간이 찾아온다. 레만호 주변으로 번개가 요란했는데, 산 봉우리 하나에서 다음 봉우리로 옮겨가며 번쩍댔다.

전기 실험 중 시체가 벌떡 일어나 앉고 몇 번의 숨을 몰아 쉬는 광경이 떠오른 것이다. 실제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아이디어는 매리가 잠을 자다깨다 하는 도중에 목격한 환영에 기인한다. 공포에 떨며 눈을 뜬 매리 셸리는 자신이 묵고 있던 방을 알아보고는 크게 안도한다. 그녀의 이야기가 독자들이 두근대는 심장과 서늘한 간담으로 사방을 살피게 되는 무서운 것이 될 것임을 짐작했다고 한다.


셸리의 반복적인 질문에 매리는 그저 이야기 하나를 생각한 게 있다고만 차분히 답하는데, 바이런과 셸리가 배를 타러 나간 동안 그녀는 몇 페이지에 걸쳐 그녀의 이야기를 간단히 써 내려갔다. 이것을 본 셸리는 매리를 집요히 설득해 한 편의 온전한 소설을 쓰게 만들었다. 10개월 동안 집필한 이야기가 마무리 되자마자 셸리는 런던의 출판사에 매리의 원고를 보낸다. 두 곳의 출판사가 거절을 했고 세 번째 출판사에서 출판을 결정하고 1818년 3월 프랑켄슈타인은 세상에 빛을 본다. 초기의 좋지 않은 평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프랑켄슈타인에서는 매리가 머물렀던 제네바의 여름이 많이 등장한다. 그녀는 제네바에서 혼자가 아니었을 때 즐겼던 많은 산책과 많은 드라이브, 그리고 수 많은 대화가 페이지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답니다라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Tip. 제네바에는 프랑켄슈타인 투어가 운영되고 있다. 제네바의 명소들을 둘러볼 수 있다. 셸리 부부가 여름을 지냈던 콜로니(Cologny)의 슈맹 드 몽탈레그르(chemin de Montalègre)에 있던 시골집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바이런이 묵었던 디오다티(Diodati) 맨션(현재는 개인 소유로 방문 불가)으로 향하는 길에는 이끼가 낀 돌벤치가 하나 놓여 있다. 항구를 바라보며 아들 윌리엄과 함께 앉아 셸리가 탄 배가 들어오길 기다렸을 법한 자리다.
참고자료_Petit Guide de la Suisse insolite/Made in Switzerland, Mavis Guinard, Metropolis / 스위스 정부관광청_자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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