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정상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

더 높이, 더 높이, 알프스 봉우리를 향하여

이성훈 | 기사입력 2014/06/18 [09:31]

알프스 정상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

더 높이, 더 높이, 알프스 봉우리를 향하여

이성훈 | 입력 : 2014/06/18 [09:31]
스위스 기차가 611개의 터널을 통과하고, 5,297개가 넘는 다리를 지나 알프스의 깊숙한 골짜기를 굽이굽이 돌아 유연하게 미끌어져 나간다. 그 유연함은 5,000km가 넘는 철도를 완성하기까지 위험 천만했던 고비들을 감추고 있다. 5,000km라는 거리 중, 1/3은 폭이 좁은 협궤 철도고, 어떤 부분에서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경사를 갖는다. 그 중 가장 극적인 트위스트 구간을 달리는 기차는 바로, 글래시어 익스프레스(Glacier Express)로, 체르마트(Zermatt)에서 생모리츠(St. Moritz)를 잇는다.

그러나, 철도에 있어서 스위스는 후발주자다. 스위스 철도가 취리히(Zürich)에서 바덴(Baden)까지 22.4km를 연결하기도 전에 미국에서는 이미 덴버(Denver)에서 시카고(Chicago)까지 철도가 놓인 상태였다. 취리히와 바덴을 연결하는 기차는 스페인 빵 기차(Spanish bun railway)라고 불렸는데, 취리히의 주부들이 바덴에 있는 유명한 빵집을 찾아던데서 유래한 일이다. 그 다음 해인 1848년에는 25일간의 내전이 있었다. 새로운 헌법을 만들고, 400개의 관세 장벽을 무너트리게 된다.

▲ Jungfraubahnen  

스위스 정부는 전국적인 교통 체계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조언을 위해 영국의 철도 엔지니어였던 로버트 스티븐슨(Robert Stephenson)을 불러 들였다. 그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스티븐슨은 잉글랜드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대중 교통 시스템을 위한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큰 공을 세웠을 뿐 아니라, 미친 속도로 달리는 기차가 승객들을 해치는 일 따위는 없을 것, 그리고 그렇게 빨리 달리는 기차를 보던 젖소들이 놀래 우유가 뭉쳐버리는 일 따위는 없을 것임을 대중에게 설득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젊은 스티븐슨은 스위스의 주요 산업 중심지를 기차로 연결하는 계획을 세웠다. 수력을 이용하는 공중 트램웨이를 산 정상까지 보내는 데도 관심이 많았다. 당시 가장 침착해 보이는 철도 프로젝트도 쥘 베른(Jules Verne)의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처럼 보였다.

스위스는 작고 아름답지만 아직까지는 부유한 나라가 아니었다. 스위스 연방 정부는 전국 철도망을 위한 계획을 주저하며 방치하고 있었다. 스위스의 주요한 철도가 전국적으로 뻗어 나가기까지는 수년이 걸렸다. 그 동안 사철 회사들이 번성을 하거나 파산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했다. 그러나 철도가 점차 늘어남에 따라 노하우도 쌓여갔다.

스위스의 엔지니어들은 어떻게 하면 기차가 높고 가파른 고개를 좀더 쉽게 오르고 통과할 수 있을지 배워나갔다. 나선형 터널이 한 번에 몇 미터씩 더 벌면서 코르크 스크루처럼 가파른 절벽을 관통하도록 하거나, 좁은 산등성이를 따라 트랙이 원을 그리며 왔다갔다 하게 만들기도 했다. 고가 철교가 협곡을 잇도록 했고, 17km나 되는 길다란 터널이 고타르드(Gotthard) 고개를 관통하므로, 최초로 알프스의 남북을 잇는 철도가 놓이게 되었다.

▲ Jungfraubahnen   

철도 건설 업체들은 교과서에도 나와 있지 않는 눈사태, 얼음장 같은 물 웅덩이, 고온의 기온, 썩어가는 바위 등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만의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동시에 더 강력하면서도 유연한 기관차와 독창적인 제동 장치가 개발되었다.

산악 지역으로 향하는 새로운 철도가 도입되면서 19세기 중반의 관광객들은 당시 가이드북이었던 배데커(Baedeker)에서 추천하고 있는 풍경을 보기 위해 도보로, 혹은 당나귀나 세단 의자에 올라 계속하여 산을 오랐다. 스티븐슨같은 엔지니어들은 어떻게하면 더 쉽게 더 많은 사람들을 산 꼭대기까지 보낼 수 있을지 고심했다.

결국 리겐바흐(Riggenbach)라는 인물이 리기(Rigi) 산을 오르는 기차 엔진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비츠나우(Vitznau)에서 슈타펠호헤(Staffelhohe)까지 이어지는 선로로, 다른 주가 시작되는 슈타펠호헤부터는 선로가 금지되었던 까닭에 승객들은 슈타펠호헤에서 하차해 리기 쿨름(Rigi Kulm) 정상까지 걸어서 가야했다. 리기 철도가 운행을 시작한 첫 해에 6만여명의 승객이 시속 8km라는 말도 안되는 속도에 몸과 품위를 싣고 리기산을 올랐다.

여기에는 마크 트웨인(Mark Twain)도 포함된다. 그의 떠돌이 여행 중 리기산을 올랐는데, 그 풍경에 대해서는 위엄한 전망이라고 칭송하면서도 기차는 기이하다고 평했다. 기차가 갑자기 하강을 시작할 때, 나는 숨을 멈추어 버렸다. 어렸을 적 난간동자를 타고 내려가곤 했었는데, 그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기차 안에서 난간 동자를 타고 내려가자니 이건 여간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고 회생했다.

톱니바퀴 철로, 증기 기관차가 발전하면서 기차로 오를 수 있는 경사가 점점더 가팔라지다가 1888년에는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48%) 톱니바퀴 열차인 필라투스(Pilatus) 철도가 탄생하였다. 스위스의 엔지니어인 모리스 쾨흘린(Maurice Köchlin)이 에펠탑 공사를 마무리 지을 즈음 융프라우(Jungfrau) 정상까지 가는 톱니바퀴 열차 수주에 지원을 하였으나, 눈사태에 대한 공포로 인해 이 프로젝트는 라우터브룬넨(Lauterbrunnen)에서 클라이네 샤이덱(Kleine Scheidegg)을 연결하는 것으로 변경된다. 


필라투스에 사용된 복잡한 이중 톱니를 개발한 에두아르드 뢰허(Eduard Löcher)가 쾨흘린과 팀을 결성하여 더 대담한 도전에 나선다. 바로, 공중 관광이다. 그는 융프라우 정상까지 한 번에 연결되는 두 개의 평행하는 튜브를 3m 간격으로 설치하여 원통형 차량을 운행할 계획을 세웠다. 승객들이 압축 공기를 마시며 밀폐된 공중 차량으로 융프라우 정상을 왕복할 수 있도록 말이다. 뢰허의 계산에 따르면 융프라우 발치에서 정상까지의 소요시간은 15분 남짓이었다. 스위스 정부는 허가를 내 주었다.

프로젝트는 신문 만평에 풍자 되거나, 환경이나 건강 및 지역 관계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난관에 봉착했다. 요즘의 고속도로나 케이블카 건설 시 벌어지는 논란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스위스 알파인 클럽(Swiss Alpine Club)은 적극적을 반대를 했고, 인터라켄(Interlaken)의 번성하던 호텔들도 그들의 투숙객들이 소음이나 공해로 등을 돌릴까 노심초사였다. 많은 이들은 그렇게 미친 고도를 오르내리는 노동자들과 관광객들이 병을 얻을까 두려워했다.

이런 논란의 한 가운데, 취리히의 기업가인 아돌프 귀예-젤러(Adolf Guyer-Zeller)가 간단한 해결책을 들고 나타났다. 이미 완성이 된 라우터브룬넨과 클라이네샤이덱을 잇는 철도에 편승해, 아름다운 전망 포인트 두 곳을 향해 철도를 잇고, 아이거(Eiger)와 묀히(Mönch)를 관통하는 터널을 통과한 뒤, 융프라우 바로 아래에 있는 빙하 지대에서 종착하자는 것이었다. 환경을 크게 훼손하지 않을 뿐 아니라, 관광객 수에 따라 부분적으로 철도를 완성해 나가면 되니 스스로 재정을 감당할 수도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60명의 의료진이 브라이트호른(Breithorn)을 향해 떠났다. 대부분 자원봉사자였던 그들은 엄청난 무게의 짐을 이고 가야만 했다. 그 중 일곱명은 가마를 이고 가야만 했다. 출발지, 중간 지점, 그리고 정상에서 의사들은 모두의 맥박을 확인했고, 가마를 진 사람이나, 가마에 탄 사람이나 신체의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데 동의했다. 드디어 1898년 융프라우반(Jungfraubahn)의 공사가 시작되었다.

아이거글레처(Eigergletscher) 역이 해발 2320m에 그 문을 열자, 아이거(Eiger) 봉우리 속을 뚫어 만들어야 하는 7km의 터널 작업을 위한 베이스캠프가 되어 주었다. 그 후 14년 동안이나 공사는 계속되었다. 재정난과 고난이도의 기술 문제, 폭파, 파업, 귀예 젤러의 사망으로 공사는 더뎌졌다. 3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세상에서 고립된 채로, 그리고 그 중 일부는 목숨을 잃으며 겨울 내내 3교대로 해발 3475m에 있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을 만드는데 쉴새없이 노동을 했다. 

오늘날 관광객들과 스키어들은 아이거 북벽을 오르는 당찬 등반가들로부터 수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터널을 통과해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까지 쉽게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융프라우의 공사가 한창일 동안 엔지니어들은 또 다른 봉우리에 관심을 돌린다. 1890년대에 발전이란 모든 알프스 봉우리가 고유의 철도를 가지는 것을 의미했다. 마침 1미터 협궤 철도가 체르마트까지 이어졌던 당시, 당연한 다음 순서는 마터호른(Matterhorn)까지 철도를 이어가는 것이었다. 스위스의 트레이드마크같은 봉우리가 눈엣가시가 된 것이다.


어쨌든 고르너그라트(Gornergrat) 정상의 광활한 파노라마를 보다 편리하게 감상하기 위한 교통 수단이 절실하던 차였다. 매년 여름 체르마트를 찾는 관광객은 3만명에 달했고, 이들은 고작 80마리에 불과한 노새를 가지고 실랑이를 벌여야했던 것이다. 체르마트 호텔 업계의 거물이었던 알렉잔더 자일러(Alexander Seiler)가 박차를 가해 가이드와 포터들의 반발을 극복하고 철도 건설의 승인을 받아낸다.
고타르드 터널과 벵에른알프(Wengernalp) 철도를 만든 베테랑 엔지니어 카를 그로이리히(Karl Greulich)가 1100명의 노동자를 데리고 와 한 겨울 폭설 속에서도 끊임없이 공사를 진행한 결과 이년만에 철도가 완성된다. 1898년이 되자 관광객들은 기차의 차창을 통해 마터호른의 웅장한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었다.

1905년 최초의 전기 산악 열차가 몽트뢰(Montreux)를 출발해 베르네제 오버란트(Bernese Oberland)를 향해 출발한다. 최초로 알프스 고지대 계곡과 레만(Léman) 호반의 작은 마을들을 편리하게 이어주는 교통편이 생긴 것이다.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관광의 황금기가 이어진다. 영광의 시간과 위기의 시간이 지난 뒤, 엠오베(MOB)는 현재 노스탤직한 아르 데코(Art Deco) 양식과 모던한 파노라마 기차를 운행한다. 피츠제랄드는 그의 소설, 밤은 돌아오지 않는다(Tender is the Night)에서 기막힌 묘사를 하고 있다. 낮은 지붕들이 사라지고 나자, 보(Vaud), 발레(Valais), 사보이(Savoy), 제네바(Geneva) 주의 하늘이 둥그런 파노라마 안의 승객들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도르레식 케이블카인 퓨니큘러(Funiculars)는 1877년부터 1934년 동안 50여개의 수직 구간의 교통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알프스 지하철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퓨니큘러는 풍경을 해치지 않으면서 날씨에 관계 없이 운행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오늘날 산악 기차는 연중 운행되어야만 한다. 심지어 겨울의 승객 수가 여름 승객 수보다 두 세배 많은 경우도 있다. 스키 인파 때문이다. 다보스(Davos)-파르젠(Parsenn) 구간은 최초의 스키어용 산악철도다. 곧 이전에 만들어진 철도들은 눈사태 방지용 장벽, 갤러리, 제설 장비 등을 갖추게 되었다.

스위스 사람들은 그들의 철도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철도 완공 50주년, 75주년, 100주년을 기리는 위해 반짝이는 브로슈어를 제작하고 버려진 구간을 회생시키고, 부차적인 철도가 폐쇠될 위기에 처했을 때 반대하는 탄원을 하기도 한다.

새로운 도전은 알프스를 지나는 물류 운송을 위해 도로대신 철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알프스 산을 관통한 지 120여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스위스 엔지니어들은 고타르드 산 아래에서 원래 17km의 터널에 57km를 연장하는 공사를 하기 위해 애를 쓴 바 있다. 이 터널은 2012년에 완공이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긴 터널로 기록될 이 터널 덕분에 취리히와 밀라노를 네 시간에서 두 시간으로 단축할 수 있게 되었다.

TIP
루체른에는 과거의 엔진과 자동차는 물론, 고타르드 터널 모델을 비롯해 각종 교통 수단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체험 위주의 박물관인 스위스 교통 박물관(Swiss Transport Museum)이 있다. 체르마트(Zermatt)와 생모리츠(St. Moritz)를 잇는 파노라마 열차, 글래시어 익스프레스(Glacier Express)는 알프스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도달하며 스위스 파노라마의 하이라이트를 끊임없이 선사한다.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전기 철도이자 관광의 황금기를 체험해 볼 수 있는 파노라마 기차를 몽트뢰(Montreux)에서 체험해 볼 수 있다. 골든패스 라인(GoldenPass Line)의 제일 앞 칸에는 운전석을 2층으로 올리고 전면에 파노라마 창문을 설치해 180도로 펼쳐지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VIP석이 있다. 골든패스 클라식(GoldenPass Classic)은 벨 에포크(Belle Époque) 양식의 차량으로 파리의 살롱에 앉아있는 착각이 들게 한다. 

인터라켄(Interlaken)에서 융프라우요흐(Jungfruajoch)까지 이어지는 기차는 유럽의 정상, 3475m까지 이어진다. 고산병의 조짐이 있는지 잘 살피며 전 세계의 지붕위에 있는 기분을 만끽하면 된다. 스핑크스 전망대(Sphinx Obeservatory)에서 펼쳐지는 빙하의 파노라마가 장관이다. 

여름이면 지역의 철도 광팬들에 의해 증기 기관차가 운행되기도 한다. 몽트뢰(Montreux) 근교에 있는 블로녜(Blonay)-샹비(Chamby) 구간에서 운행되는 증기 기관차는 자원 봉사자들이 운전을 한다. 프레다(Preda)에서 베르귄(Bergün)까지는 8km에 달하는 철도 역사 하이킹 트레일이 이어지는데, 쉬운 코스이면서도 기막힌 파노라마와 터널과 다리, 래티쉬반(Rhätische Bahn) 철도의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가까이 볼 수 있다. 참고자료_Petit Guide de la Suisse insolite/Made in Switzerland, Mavis Guinard, Metropolis / 스위스 정부관광청_사진제공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국내여행
급류 타고 동강 탐험을 떠나는 평창 어름치마을
1/3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