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창 가문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함양 일두고택

마을 중심에 이 지역의 정신적 뿌리 역할을 하는 국가민속문화재

이성훈 | 기사입력 2023/11/02 [01:39]

정여창 가문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함양 일두고택

마을 중심에 이 지역의 정신적 뿌리 역할을 하는 국가민속문화재

이성훈 | 입력 : 2023/11/02 [01:39]

[이트레블뉴스=이성훈 기자] 경남에는 한옥 마을이 여럿 있다. 그중에서 개평한옥마을은 높은 기품을 간직한 동네로 유명하다. 오랜 시간을 견뎌온 한옥 60여 채가 모여 있고, 마을 중심에 이 지역의 정신적 뿌리 역할을 하는 함양 일두고택(국가민속문화재)이 자리한다.

 

▲ 함양 일두고택 입구인 솟을대문

 

건축한 지 수백 년이 흘렀지만, 보존 상태가 양호해 영남 지역 양반 가옥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집 안 곳곳에 걸린 편액의 뜻을 하나하나 새기며 둘러보기도 좋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골목을 지나면 일두고택 정문에 닿는다. 15세기에 활약한 일두 정여창의 집이다. 정여창은 영남 사림파의 영수 김종직의 제자로 들어가 공부했다. 이후 성리학의 대가로 인정받았으며 이황, 조광조, 이언적, 김굉필과 함께 동방오현에 올랐다.

 

▲ 솟을대문에 걸린 정려 다섯 개

 

그러나 무오사화(1498년)에 연루돼 유배지인 함경도 종성에서 생을 마감했고, 죽은 직후에 터진 갑자사화(1504년) 때는 부관참시 당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말년과 사후가 순탄치 못했지만, 나중에는 성균관과 향교 문묘에 신주가 보관돼 성리학자로서 가장 큰 영광을 누렸다.

 

▲ 함양 일두고택의 사랑채 전경

 

지금의 일두고택은 정여창이 세상을 뜨고 약 1세기가 지나 건축했다. 이후 여러 차례 고치고 새로 지으며 오늘에 이른다. 입구에 당상관(정삼품 이상) 벼슬을 지낸 인물이 사는 집에 둘 수 있다는 솟을대문이 눈에 띈다. 조선 시대에는 고위 관료만 초헌(외바퀴가 달린 높은 수레)을 탈 수 있었는데, 솟을대문 높이가 초헌이 통과하기에 적당했다.

 

▲ 문헌세가라 쓰인 편액

 

집 안팎에 걸린 편액에 일두고택의 자부심이 흐른다. 첫 자랑이 솟을대문 지붕 아래 있는 정려(旌閭)다. 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가 나온 집에 내린 정려를 정여창 가문은 5개나 받았다. 하나를 받기도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드문 경우다.

 

▲ 종이에 충효절의라고 써서 사랑채 방문 위에 붙여 놓았다

 

솟을대문을 지나면 너른 마당이 나오고, 오른쪽 대각선 방향으로 사랑채가 보인다. 높게 쌓은 기단이며 반듯한 돌계단, 앞으로 튀어나온 누마루와 마당에 조성한 석가산(石假山)까지 웅장한 사대부 고택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 누마루(왼쪽)와 석가산(오른쪽)

 

사랑채 아랫도리 부분에 걸어둔 문헌세가(文獻世家) 편액이 정여창의 후손이 사는 집이란 사실을 말해준다. 문헌은 나라에서 내린 시호다. 일두고택에 있는 여러 글씨 중 압권은 사랑채 방문 위에 붙은 충효절의(忠孝節義)다. 커다란 종이에 거침없이 쓴 글자에 기백이 흐르는 듯하다. 넓게 자른 나무판자가 아니라 종이에 써서 색이 바래고 해진 흔적마저 오랜 세월의 증거처럼 느껴진다.

 

▲ 누마루 천장 모서리에 걸어둔 탁청재 편액

 

사랑채 끝으로 연결된 누마루에 서면 석가산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이 조성했다고 하나, 장대하게 자란 소나무와 그 아래 삼봉(三峯)을 상징하며 세운 돌까지 영락없는 자연의 모습이다. 이 집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사계절 무시로 변하는 석가산의 풍경을 즐긴 사랑채 주인의 고상한 풍류가 새삼 부럽다. 누마루 천장 모서리에 걸린 탁청재(濯淸齋) 편액이 주변 경치와 잘 어울린다. ‘탁한 마음을 깨끗이 씻는 집’이란 뜻이다.

 

▲ 누마루 본 안사랑채

 

누마루에서는 며느리에게 살림을 넘겨준 어머니나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이 머물던 안사랑채 마당까지 훤히 보인다. 연로한 어머니를 살뜰히 보살펴드리고 싶은 집주인의 효심과 자식을 바르게 가르치려는 부정(父情)이 모두 닿을 거리다.

 

▲ 안채 공간에서 본 헛담과 일각문

 

사랑채 옆으로 안주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적당한 높이로 헛담을 쌓고 일각문을 세웠다. 문틀 아랫부분에는 활이 굽은 모양으로 나무를 깎은 월방(月枋)을 설치했다. 여자들이 출입할 때 치맛단이 걸리지 않게 하려는 배려다.

 

▲ 안채 대청마루에서 본 마당

 

중문을 지나면 비로소 안채가 나온다. 안주인이 편하게 움직이며 살림을 챙길 수 있도록 건물 앞뒤로 곳간(庫間)과 장독대를 두고, 공간은 개방적으로 구성했다. 안채 뒤에 있는 곡간(穀間)은 습기를 방지하기 위해 기초공사 단계부터 주변 배수로를 깊이 파고, 바닥에 자갈과 숯을 여러 겹 깔았다.

 

▲ 안채 뒤쪽에 있는 곡간

 

안채 마당에 물건을 모아두는 곳간과 다른 창고다. 곡간 옆은 정여창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곡간보다 높게 짓고 지붕 단청을 화려하게 칠해 이 집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임을 강조했다. 일두고택에서 가까운 거리에 함양 남계서원(사적)이 있다. 정여창이 세상을 떠나고 약 50년이 지난 1552년, 지역 선비들이 모여 일두를 기리고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건립했다. 1556년 명종이 사액해 남계서원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 함양 남계서원 명성당

 

문루 형태로 지은 풍영루를 지나면 강의하던 명성당이 정면에 나타난다. 양쪽으로 유생이 머물던 양정재와 보인재, 애련헌, 영매헌 등을 배치했다. 명성당 뒤로 가면 사당에 오르는 길이 있다. 사당 문 앞에서 명성당과 풍영루 지붕 너머로 함양군의 들판이 보인다.

 

▲ 함양 남계서원 사당 문 앞에서 본 풍경

 

남계서원 바로 옆에 서원이 한 곳 더 있다. 문민공 김일손을 추모하며 세운 함양 청계서원(경남문화재자료)이다. 김일손도 김종직에게 학문을 배우고 무오사화 때 희생된 인물이다. 청계서원에는 수업하던 강당, 유생의 숙소 구경재와 역가재 등이 남아 있다.

 

▲ 함양 청계서원 역가재

 

함양박물관도 지나치기 아쉽다. 함양의 역사를 한눈에 살피고 다양한 유물과 자료를 둘러보기 좋다. 상설전시실에는 함양군의 선비 문화와 서원, 산성 등에 관한 유물과 자료를 전시한다.

 

▲ 함양박물관 상설전시실

 

○ 당일여행 코스 : 함양 일두고택→청계서원→남계서원→벽송사→서암정사

 

○ 1박 2일 여행 : 첫날_개평한옥마을(함양개평리하동정씨고가-함양 일두고택)→청계서원→남계서원 / 둘째날_거연정→군자정→동호정→농월정→함양 허삼둘 고택

 

○ 관련 웹 사이트

 - 함양 일두고택 www.ildugotaek.kr

 - 함양군 문화관광 www.hygn.go.kr/tour.web

 - 함양박물관 www.hygn.go.kr/museum.web

 

○ 문의

 - 일두홍보관 055-964-5800

 - 함양군청 055-960-5114

 - 남계서원관광안내소 055-962-9785

 - 함양박물관 055-960-5546

  

○ 주변 볼거리 : 안의향교, 함양 안의 광풍루, 안국사 / 관광공사_사진제공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길 5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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